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세계인구의 축소방안으로 덜 낫는 것을 국가적으로 권장되던 때도 있었는데, 21세기 들어서서 정보산업사회가 가속화되면서 자녀 두기를 꺼리는 부부가 늘어나는가 하면 가족도 귀찮다며 결혼도 마다하는 가치관의 변화로 이어지고, 독신으로 인생을 값어치있게 즐기며 살겠다는 부류가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이렇게 인간의 심성이 급변하고 있는 현대정보산업사회 속에 오늘날의 주거가 감당해야 할 가장 큰 역할은 무엇인가? 주거의 여러 가지 역할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족을 결집시키고 서로 느끼고 아끼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면,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생활패턴이 다르고, 관심사가 다르고, 활동 싸이클이 다른 시대적 괴리 속에 무슨 사고를 근간으로 이러한 역할을 만족시키는 주거건축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사안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연하당(煙霞堂)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소시켜주는 요소로 이 집의 중앙부분의 마당과 층을 연결하는 계단을 등장시켰다. 마당은 실내 어느 곳에서든 접근이 가능하도록하여 다양한 쓰임새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가족들은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투명한 유리창을 통하여 반대편에 있는 가족을 서로 인식할 수 있다. 계단의 시작점을 거실의 입구이면서 부모실의 출입구 바로 전면에 위치시킴으로써 부모와 자녀간의 만남을 자주 발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각 실들의 독립적 이용도를 높이기 위하여 실의 외각부에는 적절한 크기의 외부공간을 두었고, 다양한 행위가 다양한 위치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하여 가족 각자의 활동성도 높여주었으며, 2층 전면 부분은 퍼골라를 설치하여 이 집의 전망을 만끽할 수 있는 루의 역할을 담당토록 하였다. 3층에는 긴 스튜디오를 두어 집안에서 요구될 수 있는 다양한 쓰임새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 집의 뒤쪽 길에서 볼 때 이 집으로 인한 시각적 차단감을 해소하기 위해 이 부분의 전후면을 투명하게 처리하였다.
이 집의 당호(堂號)는 조선중기 석학 퇴계(退溪)선생의 시 구절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 연하(煙霞)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 단어는 '안개가 끼어서 뿌연 풍경', '안개와 이내' 뜻으로 한국의 회화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은근한 의미를 갖고 있어, 이 주택이 갖고 있는 장소적 이미지와 경관, 그리고 공간적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보았다.
여기에 퇴계선생이 자신이 태어난 경북 안동군 예안면 낙동강 상류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한 시 한수를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경북대학교 건축과 4학년 남영근이라고 합니다.
주택 설계 과제로 Case study를 방철린 선생님의 '연하당'으로 했습니다.
모형 제작을 위해 도면을 구하고 있는데, 인터넷에서는 찾기가 어려워
이곳에 글을 남깁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도면파일을 좀 받을 수 있을런지요?
제 이메일은 visionist@knu.ac.kr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구대학교에서 건축공학을 배우고 있는 1학년 이종호라고합니다
이번 주택 설계를 방철린 선생님의 '연하당'으로 하고싶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모형 제작을 위해 도면을 구하고 있는데, 인터넷에서는 찾기가 어려워서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도면파일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제 메일은 jongho3345@naver.com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호서전문대에서 건축과 인테리어를 배우고 있는 2학년 김형섭이라고 합니다.
이번 주택 설계를 방철린 선생님의 '연하당'으로 하고싶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모형 제작을 위해 도면을 구하고있는데 인터넷으로 찾기가 어려워서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도면(캐드파일)좀 받을수있을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메일은 yh98huw@naver.com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과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이번년에 주택 설계를 하게 되었는데 방철린 선생님의 '연하당'을 배우고 싶어 글을 남깁니다. 모형을 제작하기에 도면을 구하고 있는데 인터넷과 책으로는 정보가 부족하여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도면 캐드파일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제 메일은 j082900@naver.com (j만 영어입니다) 입니다. 도면을 토대로 모형을 제작하여 더욱 자세히 공부하고 싶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건축 전공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이번 구조 과제로 주택 분석을 하게되어 방철린 선생님의 연하당을 선택하였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으면 캐드 파일을 받을 수 있을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sk2tm@naver.com 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메일주소 남기오니 꼭 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건축 전공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이번 구조 설계 과제에서 주택 분석으로 방철린 선생님의 연하당을 선택하였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캐드 파일을 받아볼수 있을까 하여 문의 드립니다.
메일주소 남기오니 꼭 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sk2tm@naver.com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실내 디자인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학교에서 ‘주택설계’ 라는 수업에서 도면을 보고 직접 모형을 만드는 과제를 하게 됐습니다. 선생님의 연하당을 작품을 모형으로 만들어보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댓글을 남기게 됐습니다. 실례지만 혹시 도움을 주실 수 있다면 평면도와 입면도 도면파일을 메일로 보내주실 수 있으신가요? 메일주소 남깁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ten9392@naver.com
박민수: 전통적인 생각에 따르면 집을 짓는 일은 집터를 고르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생각을 따른다면, 집터를 고른 건축주의 생각이 설계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집터를 대하는 건축주와 건축가의 생각이 달라 설계가 힘들어지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하나의 집이 완성된 이 시점에서 집터에 대한 생각들이 어떻게 정리되었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건축주들이 그 땅에서 어떻게 살고자 했었고, 그런 요구조건들에 어떻게 대응하였는지 듣고 싶습니다.
방철린: 글쎄요, 땅에 대한 이야기는 대단히 중요하죠. 집을 짓건 길을 내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행위를 하건, 땅을 떠나서는 그러한 것들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특히 땅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나 지형적 특성 그리고 땅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땅의 역사 등을 파악하는 작업은 집을 지을 때 매우 중요하게 고려해야하는 것들입니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지리(풍수항적인 지리), 생리(기름짐), 인심 등을 강조한 것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좋다고 하는 땅들 대부분이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변덕에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로 잘 유지되어 왔던 것은 건강한 땅의 선택이 집을 짓는 일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시골에 서울사람들이 거주하기 위한 집을 지을 경우에 기존 동네주민들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는 상당한 고려사항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서울 사람이 시골에 가서 산다고 할 때 밀폐되는 위치냐 아니면 동화될 수 있는 위치냐에 따라 동네사람들과의 관계설정이 달라지기 때문에 집터를 선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보면 미제루가 지어진 그 땅은 지형적인 조건도 좋았지만, 적당히 숨겨져 있어서 새로 만들어지는 집이 기존 동네의 풍경을 급작스럽게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주변의 다른 집들과 잘 융화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깊숙이 숨어서 안 보이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가려지고 적당히 열려있는 있는 집터이었습니다. 건축주는 여기저기 집터를 보고 다닌 끝에 그 집터를 골랐다고 말했고 나도 그 집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거기다가 집을 지으면 좋은 집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건축주가 집터를 안내하면서 많은 생각을 풀어놓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주로 전원생활에 대한 흥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만 그렇다하더라도 그 땅을 보면서 건축주가 그렸던 그림은 설계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대학 교수인 건축주는 집에 대해 자신이 직접 계획한 플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땅을 보는 수준 높은 안목에 비해 그 플랜은 그리 훌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건축주가 돈이 많지가 않아서 최소의 경비로 땅을 사고 그냥 시골집 하나 마련해서 살겠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그 동안 자신이 보아왔던 일상적인 집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있는 일반적인 주택 즉 가운데 거실이 있고 주변에 방들이 있는 그런 그림을 가지고 집을 짓겠다고 했었던 것이죠. 그러나 건축주나 그 집 안주인과 얘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분들이 전원생활의 낭만이나 환상보다는 시골에서의 삶 그 자체에 대해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집을 지음으로써 땅에 동화되는 것을 통해 주변의 경관이나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사는 모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시골생활을 하기에 적합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땅도 좋은 데다가 건축주가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집이 생길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생각을 한 거죠. 땅은 좋지만 건축주가 OO식의 집을 짓겠다고 했다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르죠. 나하고 작업이 안됐을 수도 있구요. 이분들에게 시골생활에 적합한 집을 지어 주면 그런 생활을 잘 할 수 있다는 판단과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제가 그러한 삶에 어울리는 집을 제공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고 설계를 시작한 것입니다.
대지를 처음 접했을 때 떠올렸던 생각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건축가들은 보통 대지를 처음 보았을 때 가졌던 미지들을 집이 완공될 때까지 끌고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나는 땅을 한번 보고 바로 어떤 이미지들을 떠올려 스케치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기보다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대지를 자주 방문하고 관찰하여 그것으로부터 설계를 시작하는 편입니다. 건축주와 대지에 가본 이후에도 혼자서 여러번 대지를 찾아가서 기존에 있는 나무를 확인하거나 주변상황이나 집들과의 관계도 살펴보고 경사도를 확인하기도 했었습니다. 살릴 나무나 없애도 될 나무를 구분하여 표시도 하고 그 나무들 사이로 주변의 경관과 땅의 사용계획도 생각했었습니다. 배치계획 스케치를 하면서 거실 그리고 안방 자리를 중심으로 실들을 배치시켜 보고 그 다음에 루를 생각해 보았고, 단면스케치를 하면서 루를 살리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스케치를 하다가 또 다시 가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런 식으로 스케치 하다가 가보기를 몇 번 하면서 안을 굳혀 가고 방향을 잡기 시작했죠. 한국의 전통건축으로부터 배워야할 것이 분명히 있으며 선조들이 생각한 건축설계 방법론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통건축에서 얻어지고 배워지는 것들, 공간을 엮는 방식, 공간적 요소들간의 관계 형성, 그런 것들이 쓰여지는 방법에 대해 생각을 하며 설계에 임했습니다.
마당 특히 전통주택에서의 마당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집에서는 집의 물리적인 문맥과 관련되어 마당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집에서의 마당은 주변 자연과의 경계를 형성하는 건물들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공적인 성격을 갖는 2차적인 자연이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마당이 가지고 있는 2차적인 성격의 자연과 주변(1차적 자연)을 연결하는 문제가 설계에서 중요한 문제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땅에 대해서는 어떤 인공적인 손질도 가하지 않은채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예를 들면 필로티 등을 이용해서) 주택을 땅위에다 그냥 얹어 놓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자연의 질서와 건물이라는 인공의 질서가 병렬되어 있는 관계 같은 것이지요. 공사중에 일어날 수 있는 자연의 훼손은 조경이 아니라 땅의 모습을 복원해 놓는 방법을 통해 이러한 관계도 성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집의 마당은 인공적인 성격이 많은 것 처럼 보이고 그러다 보니 이 집 전체를 지배하는 자연이라는 풍경과 이 마당이 어떻게 관계되어 있는 지가 궁금해지는 것입니다.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말해본다면, 이 집에서는 마당과 그 위에 뚫려 있는 하늘(즉 2차적인 자연과 1차적인 자연)이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그렇게 볼 수 있다면, 이 집에서의 마당은 외부의 자연을 반영하는 거울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마당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view를 통해서 외부의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장치라고 생각이 되는 것이지요. 하늘마당에서도 이런 방식이 아니었습니까?
마당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먼저 언급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중심에 관련된 것인데, 세계 여러 나라의 주거 건축물들을 살펴보면 중심적 구성이라고 설명될 수 있는 건축물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럽의 중정식 주택들이 그러하고 멕시코에 있는 테오티화캉 역시도 궁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중정이라는 형식을 가지고 있지요. 팔라디오가 설계한 빌라 로툰다는 주택의 내부에 중심을 두고 주변에 실내공간들을 배치한 형식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중심을 형성하는 공간이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른 것과 맺고 있는 관계입니다. 예를 들어 서구에서 보여지는 중정이나 내부 공간의 중심은 형식적으로는 우리 전통건축의 마당하고 비슷하게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다른 점은 우리 전통건축에서는 그것이 주택 내부의 다른 공간들과의 관계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서양의 중심공간은 바깥으로 힘이 발산되지 않고 구심적으로만 작용하는 반면에 우리 전통건축에서의 중심공간은 구심성을 가지는 동시에 외부의 좋은 자연을 향해 확장될 수 있는 원심성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전통주택에서의 중심공간은 시각적인 효과뿐만이 아니라 행위나 행동, 또는 생활이라는 것과 관련하여 외각부와도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사랑채와 사랑마당의 관계는 그 사이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사랑채에서 외각부를 조망할 수 있는 방식이 그러하며, 안채의 경우도 안마당과 뒷쪽의 텃밭이 연결되는 방식이 그러하지요. 이처럼 우리의 마당은 공간적인 중심이면서 동시에 외부와의 연결관계도 치밀하게 고려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한국건축은 마당이라는 공간적인 중심만을 중요시한 것이 아니라 외각부와의 공간적 연결에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이것이 한국전통 건축이 서양건축과 다른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빌라로툰다가 주변에 대하여 친화적이지 않고 자기과시적이며, 사보아주택 같이 외각부에 대해 다소 대화적인 입장을 취하고는 있으나 외부와의 관계가 시각적이고 형식적에만 그치고있는 것들입니다. 반면 한국 전통건축의 경우는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이 실제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통주택에서는 시각적인 연결 관계를 넘어서 생활, 행위들이 서로 연관을 갖고 발생될 수 있도록 자연과 접한 건축의 형식이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당이 마당 자체로서 의미 뿐만이 아니고 건축물의 외각부에 있는 자연과의 관계가 맺어지는 형식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죠. 여기의 마당은 화초 같은 것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밖에 있는 자연이 있는 그대로 좋기 때문에 그것을 더 돋보이게 하는 요소로서 마당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 집의 마당에 꽃나무와 화초를 심었다고 상상해 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습니까? 마당이 정원이라는 것과는 달리 외부의 자연을 더 살릴 수 있는 환기의 요소로서 작용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이 마당과 이 마당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장치가 있어서 동시에 볼 수 있을 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에 있는 요소(자연)와 마당을 같이 볼 수 있고, 누를 통해서 밖에 있는 경치가 마당하고 같이 볼 때, 누가 없을 때는 문이 열려서 문 밖의 경치가 마당하고 같이 볼 수 있을 때, 그것이 같이 있음으로서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까 거울 말씀하셨는데 좋은 예라 생각합니다. 거울에 무엇이 잔뜩 그려져 있다면 거울을 통해서 물체를 볼 수 없지 않습니까. 자연 하나만 보면 자연 그 자체이고, 마당만 있으면 마당 그 자체이지만, 그 두 가지가 같이 놓여져 있기 때문에 두 개의 가치가 더 상승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땅(집)에 사는 사람이 진정한 방식으로 자연을 체험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따뜻하고 춥고 비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방식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드리자면 우선, 가운데 공간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고 의미론적으로 볼 때 거기서부터 가족과의 관계라든가 생활이 시작되어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고, 두 번째는 건축주가 그곳에서 생활하기에 알맞은 심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에 부합되기 위해서는 마당이라든가 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마당과 누를 연결고리로 해서 사람과 자연을 일체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방안에서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그 분들이 원하는 자연속에서의 생활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말씀을 듣다보니 중심과 자연이라는 상당히 중요한 개념들이 설계에서 중요한 주제였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사회가 중심과 자연이라는 개념들을 그리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주의나 다양성이라는 말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어찌보면 중심이라는 개념은 그 가치가 부정되거나 혹은 그 가치가 격하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건축을 통해 중심이라는 개념을 강조하고 중심이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은 어떤 의지를 동반하는 발언이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주택에서 중심을 얘기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생각 때문입니다. 저는 주택이라는 것이 가족이 하나의 중심을 가지고 모여사는 조그만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택에서는 가족들간의 유대관계도 확실히 해야하고 서로가 서로를 느끼면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 필요하며, 건축이 그런 공간을 제공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심에 마당을 도입한 것은 전통주택에서 배우는 바와 같이 마당이 그러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능적 이유보다는 그 공간을 통해 다른 공간들이 개념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심이 되는 공간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어있는 마당을 통해 각각의 방들이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제루의 서재에서 창을 통해 마당 건너편의 거실을 보고 다시 거실 바깥의 자연까지도 볼 수 있도록 하거나, 안방에서 마당을 통해서 누를 보고 다시 누를 통해 바깥 경치를 볼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생각에서였습니다.
주변의 경관이 좋으니까 자연이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는 것이라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소장님의 경우에는 주택을 설계하는 경우 항상 자연이라는 주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자연이라는 개념 역시도 어찌보면 앞에서 언급되었던 중심이라는 개념과 함께 현대사회에서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 개념중의 하나가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자꾸 자연을 직면하게 하려는 어떤 의도라도 있으십니까?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있기보다는 한국의 전통건축을 보고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전통건축의 공간만들기와 연관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들은 전통건축이 자연을 그대로 두게 하는 것이며, 더불어 그 자연 전체가 다 나의 세계일 수도 있고 또 내가 그 안에 빠져들어갈 수 있다는 것, 다시말하면 자연과 내가 다른 주체가 아니고 하나일 수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건축에서 사랑채와 사랑마당 그리고 그 밖에 있는 담이 이루는 관계를 예를 들어봅시다. 사랑채에 앉아서 가까이 있는 담 안의 마당 분위기에서 갖게되는 감정은 자기 내면의 세계로의 침잠입니다. 담너머의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은 또다른 의미를 갖게 합니다. 내부에 주목하게 될 때와 달리 외부에 주목할 때는 자기를 자연속에 던지는 것을 가능하게 하지요, 이것이 한국건축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에서 특별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자연의 좋은 조건들을 그대로 환경으로 만들자는 정신을 닮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무위이지요. 자연 즉 원래있는 그대로의 세계처럼 사람을 강하게 움직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이라는 개념이 건축을 하는데 있어서 앞으로도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간의 작업을 보면, 자연이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시니까 도시 안에서도 자연을 끌어들이려고 하시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담아내는 독자적인 방식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우리의 전통건축을 말씀하시면서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삶의 방식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그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옛날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옛날 이야기가 지금에도 유효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이러한 생각은 중심을 말할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중심이라던가 자연이라는 개념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회상황속에서 지금은 쇄락했을 수도 있는 그런 단어들이 가진 의미를 중요한 주제로 계속해서 붙들고 계시면서 실천하는 데에는 어떤 의지가 그 안에 개입되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 주제들을 강조하는 것은 어찌보면 건축가로서의 활동에는 많은 제약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보통신매체나 교통수단의 발달 등을 통해 세계가 하나의 블록으로 변해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미래가 그러한 시대로 치닫을수록 지역성이라든가 정체성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문화라는 면에 있어서 더욱더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말하면 경제나 정치인 경우에는 어떤 것이든 좋은 것을 택하여 사회에 반영시켜도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문화인 경우에는 그 지역의 특성이나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중심이 되는 생각들이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는 문화의 독자성이 더욱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옛날부터 있어왔던 중심성에 대한 것인데 주택인 경우에 특히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가족의 개념이 없어진다거나 개개인이 흩어져 사는 사회가 가능하지 않다면, 가족의 개념을 늘 유지시킬 수 있는 마지막 무엇이 하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가족이라는 공동체적의식을 꼭 잡고 있어야 할 핵이라든지 중심이라는 것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가족이라는 것은 깨지고 말것이라는, 낡아 보이지만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있죠.
루 밑으로 진입은 어떻게 해서 정해진 것입니까. 전통의 직설적인 차용이 아닙니까?
루 밑으로의 진입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좋은 것이기 때문에 인용한 것입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갖다 쓰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루 밑으로 진입하는 것이 전통주택에는 없잖아요? 사찰이나 향교에는 있지만, 그러한 진입방식을 도입한 것은 그것이 이 주택에 꼭 맞는 진입방법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사실 이러한 생각의 시작은 안방 배치의 변화로부터입니다. 안방과 마당 그리고 누가 이루는 배치는 안방이 주택의 깊숙한 곳에 숨어있었던 전통적인 주택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남녀가 유별해서 각각의 공간을 요구했던 전통사회와는 달리 남녀의 함께 이루어지는 지금의 사회구조에서는 안방이 전통적 방법같이 사랑채와 구별되어 숨어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에 마당과 연결시켜 놓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집의 경우에는 특히 앞에 누가 있기 때문에 마당 안쪽에 방을 놓아서 안방에 있으면서도 밖의 경치를 감상도 할 수 있고 집의 중앙에 놓아 집안의 중심축이 되도록 한 것이죠. 그리고 이런 생각이 지금의 사회구조와도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라면 굳이 현관으로의 어프로치를 바깥쪽에서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경사지이다보니 자연히 누가 상부로 들리게 되고 그 밑의 공간을 진입에 사용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배치를 만들게 된것이죠. 아무 생각 없이 옛날의 것을 따다 갖다놓은 것이 아니고, 현대 건축을 만듦에 있어서 무엇이 옛날의 생각과 달라진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고 이렇게 만든 것 입니다.
담장은 나중에 하실 겁니까? 없어도 좋을 것 같은데요.
담은 집주인이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가까이는 안하고 바깥쪽으로 하는데 그것을 solid한 것이 아니고 탱자나무 같이 시각적으로는 보이되 바로 들어 올 수 없도록 만들자고 했지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 집은 돈이 없던게 다행이예요. 돈이 많으면 담도 하고…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하다 보면 소위 좀 농촌에 있는 전원주거로서의 분수에서 벗어날 수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돈이 없기 때문에 전원주거답게 약간의 모자람을 갖게하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재료 선택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재료에는 그렇게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재료라는 것이 그냥 집을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지 그것을 통해 뭔가를 표현해야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워낙 재정적인 문제도 한 개의 구실로 등장했지요. 재료에 대한 생각은 배제하고 작업을 했습니다. 형태 만들기나 부분적인 디자인에 몰두하기보다는 개념이 살아있는 집만들기에 생각을 집중하고 작업을 했습니다.
형태 만들기를 생각하지 않거나, 건물이 어떻게 보일까 보다는 건물을 통해서 자연과 관계 맺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재료를 통해서 뭔가를 표현하려는 생각을 배제하려고 했다는 말씀을 듣다보면 이 집을 지으면서 행한 소장님의 작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건축가의 작업과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가로서 그러한 작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어떻게 보면 새롭게 정의해 봐야 될 부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집은 장소가 워낙 좋았고 거기서 보이는 경치도 좋았고 땅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워낙 크게 있었기 때문에 거기다 뭔가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들이 건축의 본질적인 문제를 떠나서 사람의 욕심 쪽으로 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땅에 필요한 집은, 결국 이 집이 담는 것은 생활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풍요로움을 느끼고 가족이라는 형태를 유지시켜 가면서 마을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 해나가느냐 하는 것이 집이 가져야 될 큰 역할이고 목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작업을 했고 그러다 보니 공간적인 것, 그리고 그 땅 그 마을과의 관계맺기에 관심을 쏟았고, 그 집이 형태적으로 어떠해야 할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형태적인 것을 배제하다보니 재료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좋은 재료를 쓴다거나 미적 감각을 살려 배치하고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것에 대한 시도를 한다면 그것이 자칫 마을 사람들의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을 했죠. 농촌 한 가운데 있는 주택이 주위에 있는 집들과 과연 공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었습니다.
다가구주택은 큰 조직의 사무소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경제적 타당성, 기간, 일의 진행속도 등...)로 인해 수행하기 어려운 프로젝트이므로 흔히 아틀리에 건축가들의 몫이 되고, 비록 작지만 작가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작품들이 많다고 보여진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부 소외된 분야로 거론되었던 다가구주택을 통하여 자신의 분명한 건축세계를 드러내는 건축가 방철린이다. 그는 공간과 정림건축에서 주로 대형 프로젝트를 담당한 이후,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일련의 다가구주택 시리즈를 통하여 우리에게 친숙해져 있고, 또한 이것으로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것만 보아도 이 분야에서는 특출한 건축가임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상류층을 위한 고급빌라의 등장과 함께 중하류층의 서민들을 위한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다가구주택이라는 명칭으로 건축적 질보다는 단지 삶의 안식처를 제공한다는 미명 아래 과거 소필지의 주택들이 헐리고 집장사들의 돈벌이에 크게 기여한 다가구주택이 언제부턴가 우후죽순으로 우리 주변을 채우게 되었다. 다가구주택은 이제 우리 주변에 매우 친숙하게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무심코 지나치는 도심 속의 평범한 건물로써 인지되고, 건축가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집장사들의 그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물론 그들의 질적인 면에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양적인 면에서는 주택공급률을 증대시키는데 공헌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부터 몇몇 건축가들의 도시형 다가구주택(주로 근생 + 주거 혹은 순수주거)에 대한 새로운 유형제시 이후 건축가 방철린은 1995년을 기점으로 최근까지 스텝과 하늘마당 시리즈를 통해 자기 나름대로의 건축철학을 가지고 우리 주택 유형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다가구주택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하고 있다. 필자는 얼마 전 다른 글에서 그의 다가구주택의 주제를 "家小空大"라는 말로 대변한 바 있다. 작지만 넓은 공간을 가진 집이라고 보여지는 그의 작품을 통해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두가지 이야기, 즉 공간 이야기와 형태와 물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 보고자 한다.
첫번째 이야기 | 공간
건축가 방철린의 다가구 주택 작품들 속에서 보여지는 공간구성의 특징은 가장 전통적인 건축어휘인 마당, 골목길 등을 현대적으로 각색하여 도시주거에서 부족한 공동체의 형성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의 다가구주택에 대한 공간철학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힘의 원천은 사람과의 만남이며, 이러한 만남은 열악한 도시 콘텍스트를 감안할 때 각 주거로의 진입체계와 입체화된 계단, 선큰공간, 작은마당, 그리고 옥상부의 휴게공간을 통해서 만들어지며, 이러한 요소들은 이웃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적 삶의 장치로서 해석되고 있다. 다가구주택은 건축주의 요구조건에 맞는 주택평면을 제외하면 결국 공용부분에 해당하는 복도나 계단, 그리고 발코니 정도의 구성요소만이 건축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된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철린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평면구성은 획일적으로 처리하기보다 각 층의 조건과 특성에 맞게 변화시켜 세대간의 차별성을 부각시킴으로써 공간감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공용부분이 건축가의 창의적인 사고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며, 그가 주장하는 현대인들이 자의든 타의든 잊고 있었던 공동체 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방철린은 다가구주택에서 건축가가 고심해야할 필수적 요소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건축적으로 잘 해결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1995년의 연남동 Step I을 시작으로 이문동 Step II, 그리고 역삼동 Step III(양추헌)를 통하여 도로 경계로부터 개개의 사적공간에 이르는 과정공간에 해당하는 계단과 복도를 단순한 통로의 의미만이 아닌, 과거 우리 삶의 중요한 장소였던 좁은 골목길의 대체공간(이러한 이유로 "Step"이라는 주제 도출)으로 인식하고, 여러 세대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시선이 오갈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외부로 노출시킴으로써 좁은 의미의 건축적 산책로의 역할뿐만 아니라 만남의 장소로서의 치환, 공동체 의식을 불어넣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공간을 주요한 공간(Major Space)이라 칭하고, 스텝시리즈 이후 역삼동 다가구주택이나 하늘마당 I, II를 통해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즉, 외부지향적이었던 이러한 주요공간을 내부로 끌어들이면서도 풍경의 조작 및 개방감을 확보하기 위한 차단장치나 경계요소로서 헛기둥, 발코니, 벽 등이 나타나게 된다. 가장 최근의 작품인 하늘마당 II에서는 반외부지향적으로 처리된 계단과 복도는 차단장치나 경계요소의 처리가 가장 돋보이는 작품으로, 좁은 땅에서 느낄 수 없는 외부공간의 맛을 더하고 있음은 물론 층별로 다양하게 계획되어 사는 이들에게 공간적 다양성을 제공하고 있으며, 또한 다른 주택들이 전면부를 할애해 주차장을 배치한 반면, 하늘마당 II는 동서측면에 주차장을 배치함으로써 측면으로의 시각적 개방감으로 인하여 공간의 여유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외부로 노출되었던 계단은 반내부화한 것은 P.O.E.(거주 후 평가)에 따른 것으로 보여지며, 그가 말하는 주요공간을 입주자가 선호하는 반외부지향적으로 처리하여 어느 정도 프라이버시를 갖게하고자 하는 배려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마당은 법적인 제한, 특히 주차장으로 인해 광의의 개념에서의 마당 공간을 구성하기란 어려웠을 것이고, 협의의 개념에서 4가지의 마당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현관으로서의 1층의 작은 마당이며, 두번째는 다가구주택에서 고민거리의 하나인 지하층 거주자나 근린생활시설 이용자를 위한 환경적 처리로서 내부로의 빛의 유입과 함께 통풍, 프라이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처리된 지하 마당, 세번째는 작가가 명명한 "하늘마당"으로서, 사는 이들에게 4계절에 따른 자연과의 교감을 줄 수 있는 건물주인 세대를 위한 쌈지마당, 네번째는 휴게공간으로서 파고라(역삼동 주택)나 주인세대를 위해 배려되었지만 마루를 깔아 평상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옥상마당(하늘마당 II)이다. 이와 같은 방철린의 공간만들기 작업은 우리에게 다가구주택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규범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두번째 이야기 | 형태와 물성
우리에게 다가구주택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공간적으로나 형태적으로나 부정적인 사고로 접근하려는 생각이 있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다가구주택에 대한 우리의 선입관이 그저 생활이 넉넉치 못한 서민들의 집이고, 또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건축가의 몫이 아닌 소위 집장사들의 영역으로 여겨져 좋지 못한 인상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계단실의 세로로 긴 창, 적벽돌과 흰색 페인트마감, 볼 품 없는 외부계단, 빛의 절대부족, 부실한 시공, 삶의 방식을 외면한 공간구성 등으로 우리 주변의 다가구주택의 모습에서 방철린의 다가구주택에 대한 형태 구성은 우리에게 새로운 방향성을 제공하고 있다고 불 수 있다. 그의 다가구주택들은 형태 구성과 화사드에서 중요한 몇가지 공통적인 특징과 함께 도심지의 그것에서 볼 수 없는 몇가지 매력을 가지고 있다. 즉, 개별적인 주호를 연결하는 노출계단과 복도, 그리고 노출콘크리트와 외벽 단열재로서 파스텔조의 아이소코트의 이중 화사드처리, 그리고 튀지만 괜찮게 대비되는 색채구성, 그리고 매스의 단순성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다만 그의 작품 중에서 이문동 스텝 II는 이러한 그의 특징을 의심스럽게 하지만, 점, 선, 면이라고 하는 구성의 3가지 기본요소를 화사드에서 적절히 혼합하여 꽉 짜여진 입면구성을 하고 있다. 특히 그의 모든 주택에서 보여지는 노출콘크리트의 사용은, 물론 요즈음 몇 년 전부터 일부 건축가들에 의해 유행처럼 쓰여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의 시공상태가 좋든 나쁘든 건축을 겉치레적이고 가시적이기보다, 보다 순수하고 진실된 가장 강력한 형태의지의 표현 수단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콘크리트바닥에 콩자갈을 깔아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든지, 혹은 복도부분에 타일을 깔아 관리상의 용이함이라든지 다른 다가구주택과 분명히 차별성을 갖는 입구성을 강조하는 잘 디자인된 철재대문으로 인해 비록 세들어 살고 있지만 사는 이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것 같은 구석구석에까지 그의 손길이 닿은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그가 사용하는 재료는 콘크리트, 철재, 유리, 그리고 외부 단열재로서 아크릴계 코팅재의 4가지를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노출콘크리트와 늘 함께 따라 다니는 철재의 사용은 그의 모든 작품에서 보여지며, 시공의 용이함을 위해서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발코니나 난간에서 구조재를 장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이러한 그의 물성에 대한 이해를 혼란스럽게도 하지만, 그러나 시공상태가 비교적 저렴한 시공비로 지어진 다가구주택에 비하면 우수하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그의 다가구주택에서 보여지는 매력 중 하나로도 여겨질 지도 모른다. 사실 다른 일반 다가구주택에서 보여지는 재료의 나약함과 시공강태의 불량 등을 고려한다면 이것 역시 좋게 해석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들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관리상태가 비교적 뛰어난 편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삼동 주택의 1층 진입공간 측면에서 보여지는 4개의 원형기둥을 같은 기간에 설계되었기 때문에 기인한다고 보여지지만, 하늘마당 II의 3층 테라스인 쌈지마당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작가 본인은 조형이나 재료의 쓰임새보다는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공간만들기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하지만, 결국 건물은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에 다분히 형태의 단조로움을 깨기 위한 적절한 장식적인 요소의 사용이 불가피하지 않았을까? 또한 경제적인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그의 건축형태 구성에서 바닥재 외에 부분적으로 목재의 사용이 그의 건축 조형의지를 더욱 분명하게 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형태구성은 담배라도 한 대 피우면서 외부와의 대화를 유도하는 돌출되거나 보이드하게 처리된 발코니, 그리고 보이드와 솔리드한 면의 대비와 이중적인 화사드, 그리고 밝고 어두움의 대비적인 형태구성과 선적이면서도 대, 중, 소의 면적구성으로 데스틸적이고 꼬르뷔지에적인 표피의 구성으로 보여지며, 이러한 모습은 다가구주택의 질을 한층 더 높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거론된 이야기는 방철린의 다가구주택에서 보여지는 특징 위주의 글로써 전개시켜 보았다. 사실 본 글이 다가구주택에만 한정시켰기 때문에 굵직한 몇가지 이야기를 제외하고 나면 다가구주택에서 그리 많은 이야기를 전개시키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공간적으로는 단위세대를 제외하고 나면 공용부분 이외에 별로 화두의 대상이 될 만한 주제가 없으며, 형태적으로는 비교적 절제되고 단순화된 매스를 통해 표현되고 있고, 어떻게 보면 굉장이 보편적인 건축언어로써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답사한 후 새삼 느끼는 것은, 하나에서 열까지 이 글에서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사는 이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된 건축가의 치밀한 사고가 엿보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건축가 방철린의 건축에 대한 성실함은 앞으로 그의 건축의 행로가 순탄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특히 앞으로 계속적인 다가구주택의 작업을 통하여 이 분야에 있어서 새로운 규범을 우리에게 제공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