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8월11일) 오랜만에 청평사을 찾았다. 한 17년만이다. 그때 당시 이 곳을 방문했을 때 대웅전 과 몇개건축물외에는 마당이 텅 비어있었고 중건 투시도가 한장 걸려 있었다. 지금은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고증을 거쳐 었겠지마는 웬지 좀 모자란 듯 어색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40여 년 전 대학 모임 선후배들이 등산모임으로 다시 뭉쳤다. 일도 좋지만 건강도 챙기고 자연과 문화와 친해야겠다는 게 그 속셈이다. 그리고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부부모임으로 굳어져 총 7쌍이 한 달에 한 번 서울근교 산으로, 일 년에 한번 정도는 국내외 여행으로 그 행사가 지속되었다. 회원은 건축사를 중심으로 현 대학 교수도 있고 현, 전 건설사 사장도 있다.
지난2월 제주 올레길 걷기를 하였는데 우리와 연이 있는 제주도의‘오름 오르미들’이란 모임에서 안내를 해 주었다. 회원은 주로 고등학교 교사들로 368개의 오름을 찾아 지도도 만들고 『제주오름100선, 오름 길라잡이』(김승태, 한동호저)란 책도 펴낸 제주도 알림 토박이 모임이다. 이들이 이박삼일을 자기차를 운전하며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안내해 주었다. 덕분에 이제까지 주마간산으로만 보던 제주도의 속살까지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며 올레길과 박물관 그리고 오름에 담긴 제주도 문화와 풍속의 디테일들을 들을 수 있었다.
여행 3일째 되던 날 이 들의 제안으로 원래 코스에는 없던 이승만 별장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35년 전 처음 가 보았던 허니문하우스인가 했더니 다른 곳이라며 안내를 하였다. 내륙으로 조금 들어가니 도로 양쪽으로 삼나무가 빼곡한 지역으로 들어선다. 도로 정면 삼나무 숲 사이로 한라산 정상이 보이는 게 인상적이다. 이곳이 송당이란 곳이란다. 박정희 대통령시절에 이곳에 삼나무를 심으라 지시 했다는데 사후 간벌 관리를 하지 않았는지 나무가 빽빽하고 넘어진 것도 여기저기 눈에 거슬린다. 차에서 내려 옆으로 난 삼나무 길을 걸어 들어갔다. 길 양편 삼나무 숲 바깥으론 너른 초지가 보이고 풀을 뜯는 말도 눈에 띈다.
십여 분을 걸어 들어가니 왼편 삼나무 숲 사이 공지에 준수한 팽나무가 있고 그 뒤로 집이 보인다. 현무암으로 마감된 집이 이승만 대통령 시대에 설계되었다면 제법 디자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닦이지 않은 유리창을 통해 본 내부지만 집 구조를 볼 때 꾀 현대식이었을 듯싶었다. 그런데 가구들이나 설명 팻말이 있는 것을 보면 외부에 공개를 했던 게 틀림없어 보이는데 관리가 되지 않아 집안 곳곳의 상당한 부분이 파손되어 있었다. 빽빽하게 들어선 주변의 삼나무도 간벌을 해 주지 않아-이때는 아침이라 그렇다 하지만- 이 집의 뜰에 햇빛이 들을지 걱정된다. 배롱나무도 해를 못 보아 죽은 듯하다.
상당히 씁쓸한 마음을 가지고 이곳을 떠나 예정대로 여행을 하였다.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자료를 찾아보았다. 1953년 당시 한미재단고문이었던 밴플리트가 미국식 동양최대의 목장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였고 이승만 박사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이 곳 송당 목장을 만들고 이 집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소유와 관리는 제주축산개발 소관으로 되어있었다. 설계자 기록은 없지만 며칠 후 서울서 만난 제주도 건축사 김석윤 선생은 강명구 선생작품으로 짐작된다 하였다.
관광지로서의 잠재력을 갖고 있는 제주도가 지난 2006년 특별자치도로 바뀐 후 최근 몇 년 새 나름대로 올레길도 개발하고 오름도 정리하여 관광객들이 많아진 게 눈에 띈다. 하지만 현대화되면서 제주도의 지역적 특성이 담긴 많은 문화유산수준의 옛 모습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 같은 경우 보잘 것 없는 시골도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관광자원을 개발한다. 유명건축사에게 의뢰하여 근사한 건축물을 짓고 있는 건축물은 조그만 이야기에도 이것저것 살을 붙여 그럴듯한 이야기로 둔갑을 시키는 판인데 이렇게 좋은 문화유산으로서의 관광자원을 잠재우고 방치하는 것은 너무나 큰 손실로 보인다. 제주도가 주관하고 건축사와 문화인들이 힘을 합하여 얘깃거리 풍부하고 지방특색이 있는 관광자원개발에 총력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지난해 늦은가을이었습니다. 송광사나 선암사를 찾은 건 여러차례이지만 늘 차량으로 이동을 하여 방문하였으나 조계산을 등산으로 넘으며 양쪽사찰을 보느 것 또한 뜻 있는 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사찰의 뒤에 숨겨진 산세를 느껴볼 수 있는 기회이니까요. 송광사에서 하룻밤 템플스테이를 끝내고 아침일찍 출발하여 조계산을 넘어 선암사에 도착한 것은 정오 경이었습니다. 산 뒤에서 내려와 산사를 구경하는 맛은 또 다른 느낌을 갖게 합니다.
선암사는 백제성왕529년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도선국사가 중창하였으며, 고려전기에 의천 대각국사가 다시 중창하고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는 호남의 중심사찰이었으나 지금은 태고종 총림으로 종합수도도량이기도 합니다.
조계산 배경으로 동쪽에 위치한 이 절은 산의 반대편에 있는 조계종 총본산인 송광사와 더불어 이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쌍벽을 이루고 있지만 분위기는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송광사의 뒷산은 남성적인 웅장함을 보이고 있는 반면 선암사의 뒷산은 조용하고 여성적인 온화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절의 모습 또한 뒷산을 닮은 모습입니다. 송광사는 늘 새로운 절집을 지으며 변화화고 있어 활기차고 진취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는 반면 선암사는 새로 절집을 짓기보다 있는 절집들을 잘 보호하고 간수하며 보존에 중점을 두고 있어 오랜 사찰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면서 아늑하고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영역간의 경계로서의 돌담들은 정감이 있어 오래된 수목과 함께 이 곳에서 며칠을 묵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정다운 요소입니다.